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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그룹 박성경 부회장

패러모어 2010. 7. 16. 17:01

오빠 박성수회장이 차린 옷가게 디자이너로 출발
매출 6조 이랜드 함께 일궈

 

 

 

 

박성경 이랜드그룹 부회장(53)을 매일경제가 단독으로 만났다. 평소 외부 노출을 꺼리는 친오빠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만큼 만나기 힘든(특히 언론을 통해서는) 사람이다. 그를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이랜드의 숨은 이야기, 박성수 회장과 가정사, 일과 꿈 등을 상세히 들어봤다.

먼저 `여자 박성수`라고 불릴 정도로 외모가 오빠와 꼭 닮은 그에게 "6조원대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 너무 폐쇄적이고 대외활동이 없었던 것 아니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에 박 부회장은 "회장님(그는 오빠를 공석이나 사석에서 늘 회장님이라고 부른다)이나 나나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주변에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면서 "하지만 많은 기업을 인수했고 딸린 직원과 가족이 많으니 앞으로 이미지 관리 좀 할 생각"이라는 시원스러운 답이 돌아왔다.

그는 목소리를 낮춰 "아직도 회장님은 사람들 앞에 나서기 싫어하신다. 점퍼에 야구모자 차림으로 매장을 돌아다니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면서 "내가 유통업체 사장도 만나고, 직원 가족들도 만나고 다 한다"고 말했다.

이 참에 "주변에서 `이랜드는 기독교 종교 집단`이라는 말도 있다"고 하자 그는 "다른 패션회사에서 이직해온 직원 하나가 `전 회사보다 기도 안 하네요`하더라"면서 "우리보다 종교색 강한 기업도 훨씬 많다. 이랜드는 직원 절반이 타 종교거나 무교다. 입사하는 데 종교는 아무 상관없고, 회사 운영은 종교보다 비전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화여대에서 섬유예술을 전공한 그는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했다. 당시 오빠 박성수 회장은 서울대 건축공학과를 나와 유학을 권유하는 부모 뜻을 뒤로한 채 이대 앞에 조그만 가게를 내서 옷장사를 시작했다. 평소 뜻이 잘 맞고 사이가 좋았던 오빠가 도와달라는 말에 그는 만사 제치고 들어가 디자인 일을 도왔다. 그때가 1984년이다. 박 부회장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회장님이 하는 말이면 무조건 신뢰했다. 한번 뱉은 말은 반드시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력을 자라면서부터 봐왔기 때문"이라며 "이런 말하기 쑥스럽지만 내 인생의 멘토는 오빠, 박성수 회장"이라고 했다.

84년 이랜드에 들어간 그는 섬유예술 전공을 살려 여성복 디자인을 맡았다. 오스본, 제롤라모, 로엠, 투미 등 당시 공전의 히트를 했던 여성 캐주얼이 대부분 그의 손을 거쳐간 작품. 그는 "80년대 초반만 해도 티셔츠 같은 캐주얼 의류가 거의 없었다"면서 "대부분 셔츠에 정장 바지나 정장 치마를 입고 다녔는데, 실용적인 면으로 된 티셔츠에 그림까지 새겨넣은 캐주얼 옷을 내놓으니 말 그대로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고 회상한다.

1991년 론칭해 지금까지 연간 1000억원대 매출을 올리고 있는 로엠은 그의 대표적인 성공 브랜드다. 자라, 망고 등 로엠과 타깃이 유사한 글로벌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20년 가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비결은 무엇보다 빠른 상품 기획력과 가격 경쟁력이다.

박 부회장은 94년부터는 디자인 총괄뿐 아니라 이랜드 패션제품 생산ㆍ구매를 총괄하는 이랜드월드 대표를 맡게 된다. 당시 그는 어린 두 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인도, 파키스탄 등 한푼이라도 싼 외국 소싱처를 찾아다녔다.

그의 강행군 덕에 이랜드 제품은 원가를 30%가량 절감하는 성과를 내게 된다. 그 당시 보다 많은 업무를 처리하고, 많은 국가를 방문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그에게 생긴 습관이 모자를 쓰는 것이다. 그는 "모자를 쓰면 아침에 머리 손질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고, 멋을 낸 것처럼 보여요"라며 웃었다.

지난 20여 년간 사들인 모자만 수십 개가 넘어 지금은 모자 전용 장까지 있다.

박 부회장은 2005년부터 이랜드가 인수한 고가 여성복 회사 네티션닷컴데코의 대표를 맡고 있다. 이랜드가 이 두 회사를 인수할 때 주변에서 염려가 많았다. 저가 의류를 팔아온 이랜드가 과연 디자인이 중요한 고가 여성복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양사에서 많은 디자이너가 빠져나가고 백화점에서 매장 철수 통보가 오는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박 부회장이 대표를 맡으면서 회사가 안정됐다.

지금은 네티션닷컴데코가 보유한 데코, 아나카프리 등 브랜드가 백화점에서 상위권 매출을 달리고 있으며, 올 하반기에는 데코의 중국 백화점 진출까지 앞두고 있다. 그는 "초반 흔들림은 서로 문화가 다른 기업들이 합쳐졌을 때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면서 "기존 업체 직원들에게 그동안 해왔던 방식대로 자유를 주면서 이랜드가 가진 좋은 것들, 이를테면 나누고 함께하는 문화들을 서서히 전파시켰다"고 말했다.

요즘 박 부회장이 사업적으로 가장 신경 쓰는 곳은 중국이다. 현재 중국에서 17개 브랜드가 이미 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올 상반기 매출 5300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보다 40% 성장했다. 연내 매출 1조원 돌파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중국 진출 후 16년간 현지 주재원 자녀들을 중국인 학교에 입학시키는 등 현지화에 많은 공을 들였다"면서 "최근 성과는 그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 여세를 몰아 제2 중국이 될 인도 내수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을 데려다 키웠는데 제대로 한몫하는 모습을 보면 큰 보람을 느낀다. 이 세상 모든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박 부회장의 경영철학 핵심은 `사람`과 `현장`에 있다. 사람에 대해서는 적절한 사람을 세워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고 큰 방향과 어려운 병목만 해결해주면 성과도 나고 사람도 성장한다는 원칙이 있다. 여성 특유의 세심한 휴먼터치도 빼놓을 수 없는 박 부회장만의 사람 관리방식이다. 이메일을 통해 직원 개개인과 커뮤니케이션을 즐기고, 직원들 경조사도 빠짐 없이 챙긴다. 사람을 움직이려면 먼저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래야 마음도 움직인다는 이치다. 선배 디자이너로서 후배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디자인 트렌드 설명회`도 박 부회장의 자상함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경쟁력 강화의 일환으로 실시하는 `커팅에지 프로그램`은 박 부회장의 현장 경영철학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시장에서 유행하는 최신 트렌드를 제대로 알도록 하기 위해 전 직원이 매장에서 의무적으로 직접 고객을 응대하고 판매를 경험하도록 했다. 하지만 단순한 트렌드만 파악하는 게 아니라 고객의 불편사항과 시장을 제대로 알아야 진정한 고객중심 경영이 이뤄진다는 뜻도 담겨 있다.

그 덕분에 스탭부서 직원들이 현장 판매사원을 경시하지 않게 돼 상호 소통이 원활해지고 이는 업무 능률로 이어진다. 또 현장 판매직원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정기적인 교육을 체계적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우수 판매사원에 대한 포상제도도 박 부회장 의견으로 도입ㆍ시행되고 있다

지금도 박 부회장을 비롯한 디자인 부문 인력들은 매주 현장에서 고객과 트렌드 조사를 하고 있다. 두 회사를 겸임하느라 누구보다도 바쁜 일정이지만 이 시간만큼은 절대 양보하지 않고 직접 챙긴다.

 

 

 



◆ 두아이 키우며 일하다 보니 20년째 도시락 점심

= 박 부회장은 회사에서 `큰언니`로 통한다. 내성적인 성격인 오빠와 달리 그는 호탕하고 말하기 좋아하며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해서다.

일방통행만 할 것 같이 깐깐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직원들 개인사까지 일일이 챙기는 따스함을 갖췄다. 한 이랜드 직원은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는 성격이다. 그러나 일을 마치고 나면 회식 자리에서 사람들도 안아주고 얘기도 들어주고, 사적인 일까지 일일이 챙긴다"고 귀띔했다.

박 부회장은 20년 넘게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닌다. 사무실에서 도시락을 먹으면서 이메일로 직원들과 소통하고, 신문도 보고, 일정도 짜기 위해서다.

그는 "점심 때 도시락을 간단히 먹으면 오후에 졸리지 않아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면서 "대신 저녁을 많이 먹는다"고 말했다.

점심시간도 쪼개 활용하는 것은 결혼 후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부터 찾아낸 노하우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엇을 할지 분 단위, 시 단위로 쪼개서 행동했다. 일을 하면서 육아를 소홀히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저녁에는 일찍 들어가 밥을 하고 아이들 공부도 최대한 봐줬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일일이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았다.

본인이 알아서 하도록 독립심을 키워준 것. 공부나 점수에 대해 한 번도 얘기해본 적이 없단다.

성공하는 데 만점이 꼭 중요한 것은 아니며, 그것보다 예의를 갖추고 사람들을 배려하고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다.

현재 아들(30)은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고, 딸(24)은 파슨스에서 미술 공부를 하고 있지만 진로 결정에 간섭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육아법은 직원 관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책임과 권한을 주고 그들이 스스로 하게 만든다.

직원들 자기개발을 위해 몇 개 계열사에서는 일찍 나오고 오후 6시에 `칼퇴근`하는 것을 시범적으로 하고 있다. 시간이 되면 아예 불을 꺼 버린다.

■ 박성경 부회장은…

△ 57년 목포 출생

△ 79년 이화여대 섬유예술학과 졸업

△ 84년 이랜드 입사

△ 91년 제롤라모 대표

△ 94년 이랜드월드 대표

△ 현재 데코네티션닷컴ㆍ이랜드 대표 겸 이랜드그룹 부회장

△ 2008년 코리아패션대상 대통령표창

△ 2009년 삼우당 섬유패션 대상

[김지미 기자 / 사진 = 김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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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5 17:16:29 입력, 최종수정 2010.07.16 16:25:41